바보처럼 당하지 않는 법1. 제대로 알고 난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수할 수 있어야 실망도 안한다.
혹시라도 소개팅받기 전에 상대방 키가 궁금하실 수 있어요. 만약에 그분 키가 180이라고 하신다면, 그분 실제 키는 아마 175정도일 겁니다. 심지어 깔창 한 5cm 깔고 영혼까지 끌어 모아서 175인 걸 수도 있어요. ‘대한민국 성인키 조사 응답결과’ 한번 인터넷에 쳐보시면요. 키 168 169 178 179cm이신 분들은 다 멸종하셨습니다. 여기만 막대그래프가 푹 꺼져있어요. 반대로 키가 170 180이라고 응답하신 분들은, 정규분포 가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혼자서 치솟아 계십니다. 여성분들 중에 키 큰 게 싫으셔서 일부러 낮춰 얘기하는 분들이 아니고서는, 다 자기 실제 키보다 높여 말합니다. 저라고 뭐 다르겠습니까 저도 그래요. 이걸 알고 소개팅에 나가셔야 실망하지 않으실 수 있어요.
구인공고가 떴는데, 시급이 18000원 ~ 22000원으로 나와 있어요. 그럼 여러분이 받을 시급은 얼마라고 생각하고 가야 할까요? 백이면 백 18000원입니다. 심지어 명목상 시급은 15000원인데 주휴수당에 이것저것 다 합쳐서 최종적으로 받는 돈을 근무 시간으로 나눠야 18000원 나올 거에요. 그 어떤 스펙을 들이밀어도 웬만하면 18000원일 겁니다. 심지어 구두에 유니폼에 뭐 이것저것 준비하고 사야 된다고 돈이 오히려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런 걸 알고 가셔야 실망하지 않으실 수 있어요.
일하러 갔는데 사장님이 ‘우린 정으로 일하고 의리로 일한다. 그래서 근로계약서는 따로 안 쓴다’ 이런 얘기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정으로 의리로 일하는 낭만도 한번 부려보실 순 있어요. 근로계약서 안 쓴다는 게 사장님이 처음부터 아주 그냥 작정하고 여러분한테 사기 치려고 하는 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다만, 여러분 스스로는 나중에 혹시 문제 생겼을 때 사장님이 모른 체 할 수 있는, 아니 모른 체 할 경우까지 예상하고 일하셔야 되는 겁니다. 이런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있으시면 낭만 있게 일 하시는 거고, 이걸 감수할 생각이 없으시면 근로계약서 쓰고 일하셔야 하는 겁니다.
여러분께 친숙한 ‘게임’을 예시로 들어볼게요. 확률형 아이템 관련한 ‘자율규제’ 얘기인데요. 게임 내 아이템의 획득확률정보를 게임 사가 ‘자발적으로’ 공개하여 이용자들의 구매 판단을 돕는 거랍니다. 규제 대상인 ‘당사자들’이, 본인들 스스로를, 자율적으로 규제해서, 본인들에게 불리한 정보를 공개한다...... 취지는 참 좋아 보였죠. 근데 그렇게 자율규제해서 어떻게 됐나요. 소위 대기업이라고 불리는 메이저 게임사조차도 확률 조작하다 걸려서 트럭 시위 일어나고, 유저 간담회에서 망신당하고, 법정까지 가서 배상하고 했잖아요.
자율규제는요. 수많은 장점과 논리로 포장해놨겠지만, 결국 규제받아야할 대상이 받았어야할 규제를 안 받게 해주는 게 그 본질입니다. 타율규제 하지 않으면 게임사가 과도한 이익을 벌어들일 여지가 있단 걸 알면서도, 규제 안 하고 고양이한테 생선 맡기는 거에요. 당연히 자율규제 시행 초기에야 다들 잘 지키려고 하겠지만요.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일 기회가 버젓이 열려 있고, 그 유혹이 계속되기 때문에, 결국 누군가는, 언젠가는,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선을 넘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기가 일어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할 정도의 투명성을 갖추지 못하면, 사기는 결국 일어나기 마련이에요. 누가 그 사기를 쳤는지, 언제 그 사기가 일어났는지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사기는 일어나고 피해는 발생합니다. 언젠가 결국 소비자 피해가 일어날 수 있단 걸 알면서도, 알아서 잘 한다니까 믿어주자면서 내버려 두는 게 ‘자율규제’인거죠.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시행 초기에야 초심을 담아 잘 지키는 거고, 나중엔 뭐 니들 알아서 선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돈 벌라고 사회가 합법적으로 허용해준 거나 다름없습니다.
사기가 언젠가는 필수불가결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기들 알아서 규제하라고 하는 현행 자율규제 방식이 계속되는 한, 확률형 아이템이 있는 게임 하실 때는 사기당할 걸 알고, 그걸 감수하고 거기에 돈을 쓰셔야 합니다. 그 게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언제든 조작당하고 사기당할 수 있단 걸 알고서도 게임을 하셔야 실망을 안 하실 수 있다는 겁니다.
세상일이 사실 다 이렇습니다 여러분.
나이 들어 어른이 될수록
세상에 계속 실망하게 돼서 더는 기대를 안 하게 된다는 얘기 들어보셨겠죠.
세상이 다 이래서 그래요.
이게 잘못이다, 이게 본질이다 가지고 싸우는 것보다 더 급한 건,
일단 당장 현실은 이렇다는 걸 본인은 알고 계셔야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께서 이런 세상을 고쳐주시는 소위 ‘영웅’이 되어 주셨으면 더 좋겠고,
적어도 일단 당하고 실망하지는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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