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비 [811013] · MS 2018 (수정됨) · 쪽지

2018-04-18 17:19:28
조회수 14,220

작년 수능장에서 유쾌한 사수생 만난 썰 2. S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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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정심을 유지해야 했다.


전 날 자기 전에 온갖 시뮬레이션을 하며 


별의별 가능성을 열어두고 왔지만,


살다 살다 수능날 아침에 합격수기를 쓰는 사람은 생각지도 못했다. + 악수라니.


평가원을 정복하러 왔는데,


처음 보는, 이상한, 나보다 약간 나이가 더 많은 것 같은 한 사람에게 정복당했다.


눈을 감고 세수를 연거푸 5번 정도 했다.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물론 그 생각은 교실 문을 열자마자 날아갔다.


수기를 두 장째 쓰고 있었던 것이다.


터져 나올뻔한 웃음을 간신히 입을 가려 막은 후 자리에 앉았다.


나는 교실의 가운데에 있었고, 그 사람은 내 오른 편에 앉아 있었다.


나는 정말 다시 오른 편을 봤다가는 이 수능이 19' 수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왼편으로 돌아앉아 애써 비문학을 읽어 내려갔다.


언제쯤 시간이 지났을까,


조용하던 교실이 조금은 사람으로 채워졌다.


내 왼편에도 사람이 앉았는데, 내가 계속 그쪽을 보고 있으니 그 분도 적잖이 당황하셨지 싶다.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립니다. (진심)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 감독관 분들이 입장을 하셨고,


내 뇌는 적당히 깨워져 있었다. 그 사람 생각도 많이 안 났고.


정신없이 국어와 수학을 치렀다.


그 사람은 특별히 주의를 끌지 않았다.


다리를 떤다거나, 기침소리를 낸다거나 등등..


근데 아까 그 왼편에 앉은 놈이 문제였다.


다리를 무슨 경운기 시동 걸 때 모터처럼 돌려 댔다.


사실 사과 취소한다. 시발 새끼.



4)


식사시간이 되었고, 급식소로 이동해 밥을 먹으라는 방송이 나왔다.


몇몇 아는 친구들과 같이 가려는데, 그 사람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사라질 땐 빠르게 사라지는 멋진 사람이었다.


미지근한 죽을 먹으며 (사실은 마신다고 하는 게 더 가까운),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긴장이 풀렸고, 그 사람 생각은 나지 않았다.


다시 교실에 돌아와보니 그 사람이 제일 먼저 와있었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던 아침과는 달리,


긴장이 풀려서인지, 입에 무언가가 들어가서 인지는 몰라도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또 수기를 쓰고 있었다면 웃음이 났을 수도 있지만,


다행히도 그는 문제집을 보고 있었다.


덕분에 나도 남은 시험에 집중할 수 있었다.



5)


무사히 영어와 탐구를 마치고, (왼편 새끼 다리 안떨었음)


우리 교실은 제2외국어를 보는 반이라,


제2외국어를 보는 애들을 제외하곤 나가려던 참이었다.


나는 아랍어 정시충이기에 여전히 남아있었다. (당당)


그때 다시 놀라운 광경을 봤다.


탐구만 하고 가는 애들을 그 사람이 일일이 악수를 해주기 시작했다.


수고하셨어요, 고생하셨어요 등의 말과 함께.


정말 나중에 정치를 하려고 저러는 걸까?


온갖 생각이 드는 순간 그는 악수를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따라나섰다.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목적지는 화장실이었다.







- 3편에 계속. (마지막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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