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生花 [529930] · MS 2014 · 쪽지

2015-07-16 20: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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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 외줄을 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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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끝나갈 무렵, 강원도 산맥의 눈이 채 녹지도 않은 그날, 나는 제대했다.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쁨을 뒤로 하고 그날 저녁 아버지께 수능을 준비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늦은 나이에.....위험이 얼마나 큰지 물론 알고 있으며.....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포부를 위해서는 해야겠다.....도와달라....'

미주알고주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버지께서 한참을 들으시더니 한 마디 하신다.


'알겠다. 가을에 보자.'


그리고 오늘 서울의 여름날 저녁은, 가을날의 저녁을 연상케 한다. 바람이 선선하게 분다. 이 바람이, 지난 겨울의 약속을 되돌이켜 보게 한다. 나는 얼마나 왔을지, 얼마나 더 가야할지를 헤아려 본다.


우습게도, 수험 생활의 가장 큰 적은 감정이였다. 감정이 흔들린다. 외로움인가. 채워지지 않는 사람에 대한 갈망인가. 외로운 광대가 난장에서 외줄을 탄다. 줄은 흔들리나 광대의 마음은 오롯이 한 가운데에 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떨어지지 않는다.' 매순간 줄은 좌우로 흔들린다. 줄은 계속 흔들린다. 그럴수록 광대는 더욱 자신의 마음을 오롯이 한다. 광대는, 외줄을 탄다.

 

나는 광대다. 대한민국 60만 광대 중 한명이다. 입시라는 난장에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그저 수많은 광대 중 하나이다. '광대 끈 떨어졌다.'라는 속담이 있다. '제 구실을  다 하지 못하여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내 끈이 떨어지면 어쩌지... 수많은 걱정과 고민의 불안 속에서 펜을 잡는다. 감정이 더욱 동요한다. 줄이 더욱 흔들린다. 광대가 오롯이 했던 마음은 조금씩 흔들린다. 줄이 너무 흔들려서 견디기 힘들어 자세를 유지하려 한다. 잘 되지 않는다. '떨어지면 안되는데... 떨어지면 안되는데...'


눈물이 난다. 그러다 오른쪽의 광대를 본다. 나와 같다. 왼쪽의 광대를 본다. 나와 같다.


똑같이 흔들린다. 똑같이 버티기 힘들어 한다. 똑같이 괴로워 한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지금 힘들고 눈물나는 삶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도서관 앞에 앉은 내 옆 학생의 것이기도 하고 학원 내 앞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의 것이기도 하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다.

이 고통은, 이것은, 이또한 지나가리라.


나는, 우리는, 소중한 사람이다. 지금 나를 보듬고 위로해줄 사람은 사실 나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다.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보낸다. 그리고, 내가 나를 달랜다. 그렇게 남은 시간을 스스로 위로하며 보낸다. 약해지면 안된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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