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첨삭] 천하제일논술대회 : 3번 참가자의 답안 첨삭
천하제일논술대회 3번 참가자 cogito.pdf
14아름다움 (13인문).pdf
결국 하루 쉬고 말았지만 ㅠ
공개첨삭은 계속됩니다. 쭈욱
세 번째 답안은 cogito님의 답안입니다.
거두절미하고 바로 첨삭으로 들어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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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1>
각
제시문을 관통하는 주제어는 ‘아름다움’이다. 제시문 가는 자연미를, 제시문 나는 필요미와 조화미를, 제시문 다는 인위적인 자연미를 추구한다.
제시문
가는 인위적인 것이 불러오는 폐단을 말하고 있다. 제시문 나는 인위적인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무량수전이 주위의 환경과 어우러진 것은 우연성보다도 계획적인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제시문 다는 겉으로는 자연미를, 속으로는 인위미를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므로 타자가 의식하지 않는 범위에서 인위미가 추구되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것의
연장선에서 제시문 가와 나가 동시에 ‘순리’를 언급하며 그
아름다움을 주장한다는 점이 아이러니인데, 제시문 가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상태에서만 순리의 아름다움이
가능하다고 본다. 반면 제시문 나는 단순미를 전제로 인위가 순리적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자연과 어우러져 자연을 더욱 아름답게 해준다고 까지 말하고 있다.
제시문
다는 제시문 가와 차이가 두드러진다. 겉으로는 자연미를 추구하는 것이 마치 제시문 가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으나, 실상 제시문 다의 주장은 인위미의 극치를 통해 자연미의 모조가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즉 제시문 다는 인위미, 제시문 가는 자연미, 제시문 나는 조화미로서 그 차이가 분명한 것이다.
또한
제시문 가는 자연미, 다는 인위미로서 감상의 대상 그 자체로부터 아름다움이 발산한다. 그러나 제시문 나의 무량수전은 자연과 조화된 아름다움이므로 아름다움의 근원이 무량수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무량수전이 도심 한 가운데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면 그 아름다움은 상당히 반감될 것이다.
제시문
가, 나, 다는 아름다움이 발현하는 방식과 그 근원에 있어
차이가 존재하며, 동시에 말하는 바가 아름다움이라는 것에 그 공통점이 있다. (89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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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1>
각
제시문을 관통하는 주제어는 ‘아름다움’이다. 제시문 가는 자연미를, 제시문 나는 필요미와 조화미를, 제시문 다는 인위적인 자연미를 추구한다.
-> ‘아름다움’이 주제어임을 앞서 밝히고 있습니다. 몇 번이고 강조하지만, 주장은 반드시
근거를 필요로 합니다. 여기서는 각각의 제시문들이
‘어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지를 나열하며 ‘아름다움’이 주제어인 근거를 들어주고 있습니다.
->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각 제시문들이 어떤 사례를 들어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 정도까지는 언급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 정도가
있을 듯 합니다. 뭐 큰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근거는 어쨌든 주장에 비해 ‘구체화된 논의’로 뒷받침 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니까요.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제시문
가는 인위적인 것이 불러오는 폐단을 말하고 있다. 제시문 나는 인위적인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무량수전이 주위의 환경과 어우러진 것은 우연성보다도 계획적인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제시문 다는 겉으로는 자연미를, 속으로는 인위미를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므로 타자가 의식하지 않는 범위에서 인위미가 추구되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
가, 나, 다의 주장을 병렬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이 학생 역시도 제시문들을 비교 기준에 맞게 묶어내는 것은 역시 앞선 참가자들과 비슷한 정도로 다소 부족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연세대학교에서 나온 삼자 비교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한 부분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선 첨삭에서 몇 번 언급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더 강조하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 여기서는 ‘표현의
명확성’의 측면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우선 각각의 제시문에 대한 이해를 짚어보기로 합시다. ‘무량수전’을 미적 인식의 대상물로 들고 있는 제시문 (나)의 주장에 일단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인위적인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은 무엇을 말하나요? 그것은 ‘인위적인 것은 나쁜 면이 있지만 꼭 나쁘지는 않다.’라는 주장입니다. 사실 그 자체로 놓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다만 (나)의 온전한 주장과는 ‘다릅니다.’
제시문 (나)가 말하는 주장이 ‘인위적인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는 것이던가요? 아니면 “자연이 계획적 인위성과 조화를 이룬 것이 감상자에게 미적 인식을 불러 일으킨다.”
이던가요? 둘 간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논술에서
주장 및 결론은 ‘완전한 주장’을 써 주고 그에 대한 근거를
들어주는 방식으로 구성됩니다. 이는 논리적 서술의 필요조건입니다. 실제
합격자 답안들을 보더라도 ‘부차적인 말’을 주장으로 삼아
글을 구성하지는 않습니다. 반드시 ‘결론’은 완전한 결론을 작성해주세요. 지금 여기서는 그 자체로 제시문과
부합하지 않는 말을 쓰는 오류가 발생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만, 이런 식의 주장 및 결론의 작성은 언제나
그런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의
연장선에서 제시문 가와 나가 동시에 ‘순리’를 언급하며 그
아름다움을 주장한다는 점이 아이러니인데, 제시문 가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상태에서만 순리의 아름다움이
가능하다고 본다. 반면 제시문 나는 단순미를 전제로 인위가 순리적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자연과 어우러져 자연을 더욱 아름답게 해준다고 까지 말하고 있다.
-> ‘순리’를 언급하며 아름다움을 주장한다는 공통점 안에 들어있는 차이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도 서술상 조금 더 발전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싶은데요. 가, 나가 ‘순리’를 공통적으로
언급한다는 것을 앞에 제시할 것이 아니라, ‘제시문간의 상반성을 담고 있는 완전한 주장’을
먼저 쓰고 이에 대한 근거로 ‘순리’의 표면적 공통점 가운데
차이점을 언급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점입니다.
-> 또한, ‘순리’에 대한 이 비교에서 (다)에 대해 이 답안에서는 어떤 언급도 하지 않고 있는데요. 사실 이 역시 이유는 명백하죠. 자연스러운 양태를 보이지만 실제론
완전한 인위적 연기에 기반하고 있는 (다)의 주장 그 자체에
‘순리’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개념어로 등장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제시문
다는 제시문 가와 차이가 두드러진다. 겉으로는 자연미를 추구하는 것이 마치 제시문 가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으나, 실상 제시문 다의 주장은 인위미의 극치를 통해 자연미의 모조가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즉 제시문 다는 인위미, 제시문 가는 자연미, 제시문 나는 조화미로서 그 차이가 분명한 것이다.
-> 역시 각 제시문의 이해에서는 큰 문제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다만, 앞서 지적한 면과 같이 ‘서술상’
측면을 지적하고 싶네요.
-> 제가 계속 이 ‘서술상’의 측면을 지적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사실 학생이 쓰신 두 비교기준은 분명히 제시문에 기반한 것이기에 절대 틀렸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두 비교
기준은 결국 ‘일반론적인 논의’에서의 가, 나, 다의 주장의 대립지점, 즉
비교 기준이 형성되는 지점에서 이미 드러난 것을 ‘단순한 사례 차원에서의 비교’로 서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한계를 가진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학생께서 작성하신 답안을 보면 비교 기준은 두 개가 제시되었습니다. 첫 번째 비교
기준은 (가), (나)를
들어 둘 모두 ‘순리’의 아름다움을 언급하지만 그 기저에
깔린 아름다움의 발현 방식과 근원이 다르다. 그리고 두 번째 비교 기준은 (가), (다)를 들어
겉으로는 자연미를 보이는 면에서는 같으나 (가)는 자연미
그 자체이고, (다)는 실상 인위미라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미리 말씀 드리자면 이 두 비교 기준은 성립하며 틀렸다고 할 수 없습니다.
-> 다만, 이런 겁니다. 비교 기준은 가, 나, 다의 완전한 주장들 간의 비교를 하는 시점에서 이미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말하자면, 학생이 제시한 두 비교기준은 사실 궁극적으로 존재하는 비교 기준의 ‘사례’적 차원의 비교 기준, 즉 ‘일반론’에 뒤따르는 ‘구체적 사례’ 차원의
비교 기준인 것입니다.
-> ‘순리’의 양태가 다른 것은 결국 가, 나의
아름다움의 구성이 ‘자연미’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가 아니면
‘자연미와 인위미의 조화’에 의해서 이루어지는가의 차이에서
비롯한 것이죠.
-> 또한 ‘겉으로 드러나는 자연미의 기저의 차이’는
결국 (가)는 ‘자연
그 자체’에서 아름다움의 근원을 찾지만 (다)는 사실 아름다움은 인위성의 극치이지만 겉으로 자연미를 보이는 양자의 ‘역설적
합일’로 구성된다라는 ‘일반론적 논의’에 따라오는 구체적 사례 차원에 불과합니다. 분명 학생이 ‘순리’나 ‘자연미의 기저’라는 비교 기준을 찾아낸 것은 그렇지 못한 학생들에 비해 대단한 것이기에 칭찬을 해줄 수 있겠지만, 이러한 비교가 ‘일반론적 논의’에
따라오는 ‘구체적 차원의 논의’라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 이렇게까지 주장간의 비교를 강조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비교는 사실 ‘일반론적 차원의 비교’로 모두 정리할 수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일반론적 차이’가
‘구체적 차이’로 드러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자칫 ‘구체적 사례’ 차원에서만 비교 기준을 잡으려고 시도한다면 이는 ‘각론’에서의 비교, 즉
‘자의적 비교기준의 설정’의 오류에 빠지게 될 공산이 큽니다. 지금 학생의 답안은 그렇게 빠지지 않고 균형을 잘 잡은 경우에
속합니다만, 이 답안이 목표가 아니라 실제 시험장에서 합격 수준의 답안을 작성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가
된다는 점을 명심해주세요.
또한
제시문 가는 자연미, 다는 인위미로서 감상의 대상 그 자체로부터 아름다움이 발산한다. 그러나 제시문 나의 무량수전은 자연과 조화된 아름다움이므로 아름다움의 근원이 무량수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무량수전이 도심 한 가운데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면 그 아름다움은 상당히 반감될 것이다.
-> 이 비교는 앞선 ‘가 vs 나, 다 / 그리고 나 vs 다’의 비교가 온전히 이루어진 후에 할 수 있는 각론적 비교입니다. 각
제시문의 중심적 논의에는 이 내용이 포괄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다만 온전한 비교가 이루어지고 난 다음 이런 비교를 해주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으며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요인이 됩니다. 다만, 이런
각론적 비교가 주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반드시
제시문의 중심적 논의에 입각한 비교를 하겠다는 마음 가짐을 가지고 문제에 접근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온전히 이루어지고 난 다음 더 비교 기준을 설정하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없고 가산의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주가 되어서는 안되겠죠.
제시문
가, 나, 다는 아름다움이 발현하는 방식과 그 근원에 있어
차이가 존재하며, 동시에 말하는 바가 아름다움이라는 것에 그 공통점이 있다. (890자)
-> 마지막 간결한 정리는 칭찬할만 합니다. 전체적으로 글의 구성이 매우 간결하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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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2>
다이아몬드
원석은 어떠한 가공도 되지 않은 상태이며 물방울 다이아몬드는 가공이 완료된 상태로서 각각 자연미와 인위미를 뽐내고 있다.
원석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 원석이 어떻게 가공되느냐에 따라 물방울 다이아몬드보다도 더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원석보다도, 물방울 다이아몬드보다도 못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가능성을 품고 있는 존재로서 원석을 무조건적으로 예찬할 수 없는 것이다. 그저 가능성, 잠재성이라는 것 하나로 원석을 물방울 다이아몬드보다
우위에 놓을 수 없다.
물방울
다이아몬드는 가공미, 인위미를 보이고 있는데, 원석을 이렇게
세공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과 기술이 필요하다. 아름다움은 물방울 다이아몬드가 홀로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원석이 물방울 다이아몬드가 되기까지의 과정 또한 아름다움의 일부다.
이러한
견지에서 제시문 가의 논지는 반박이 가능하다. 원석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내포한 가능성, 잠재성 때문이다. 그러나 제시문 가의 미론(美論)은 비타협적인 자연미로서 원석의 가능성마저 부정되고
있다. 설사 제시문 가의 주장이 원석의 가능성을 용인하는 것일지라도 모순이 존재한다. 원석의 ‘가능성’이란
곧 원석이 다른 어떤 대상이든 ‘될’ 수 있다는 점에 기인하는
것인데 만약 가의 주장이 이 ‘가능성’을 인정하는 꼴이라면
‘자연’적인 원석이 ‘인위’적인 무엇인가로 되는 것을 긍정하는 것이므로 모순이다.
또한 가의 필자는 자연의 대상을 인위적으로 아름답게 하려는 시도 또한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한 시도로 인해 매화가 병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희생
없이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나무는 일생에 단 한 번 꽃을 만개하고는 죽는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상태의 매화도 꽃을 한 번 피우고 나면 큰 영양손실을 입는다. 자연미라고해서 감상의 대상이 희생 없이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적절한 자연미와 인위미가 중용을 지키며 어울리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조화미라고 한다. 제시문 가의 자연미는 미에 대해 협소한 가치관을 드러내고 있다. (1023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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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2>
다이아몬드
원석은 어떠한 가공도 되지 않은 상태이며 물방울 다이아몬드는 가공이 완료된 상태로서 각각 자연미와 인위미를 뽐내고 있다.
-> 다양한 관점과 대응할 제시문 (라)의
다이아몬드 원석을 앞선 ‘자연미와 인위미’의 논의에 따라서
재구성했습니다. 우선 다양한 관점과 (라)의 두 다이아몬드를 대응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해석/대응의 대상이
되는 (라)의 대응이 일어나는 지점을 명확히 확립했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원석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 원석이 어떻게 가공되느냐에 따라 물방울 다이아몬드보다도 더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원석보다도, 물방울 다이아몬드보다도 못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가능성을 품고 있는 존재로서 원석을 무조건적으로 예찬할 수 없는 것이다. 그저 가능성, 잠재성이라는 것 하나로 원석을 물방울 다이아몬드보다
우위에 놓을 수 없다.
물방울
다이아몬드는 가공미, 인위미를 보이고 있는데, 원석을 이렇게
세공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과 기술이 필요하다. 아름다움은 물방울 다이아몬드가 홀로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원석이 물방울 다이아몬드가 되기까지의 과정 또한 아름다움의 일부다.
-> 앞선 제시문들의 논의 지점인 자연미와 인위미를 통한 관점의 구성, 그리고 이를 가지고
‘가공미, 인위미’를
언급하며 앞선 ‘무량수전’과 ‘여성의 태도’의 아름다움과 ‘물방울
다이아몬드’의 아름다움의 양태를 고려해 답안을 충실히 작성했다는 점이 보입니다. 혹시 자의적으로 답안을 작성하는 와중에 우연히 이렇게 답안이 구성된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답안을 구성한 것인지는 한번 점검해주세요.
-> 그리고 다른 답안의 첨삭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가)의
제시문에서 드러나있는, 비판받는 입장에 있는 ‘문인화가와
상인’의 입장 역시도 (라)를
해석할 수 있는 준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해주세요. ‘문인화가와
상인’은 (나), (다)의 주장과 다르면서도 (가)와
명확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기에 (라)의 해석을 통해 (가)의 논지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선택지로서 기능합니다. 합격자들은 이를 ‘경제적 관점’이라는
형태로 구체적으로 관점을 뽑아낸 바 있습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제시문 가의 논지는 반박이 가능하다. 원석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내포한 가능성, 잠재성 때문이다. 그러나 제시문 가의 미론(美論)은 비타협적인 자연미로서 원석의 가능성마저 부정되고
있다. 설사 제시문 가의 주장이 원석의 가능성을 용인하는 것일지라도 모순이 존재한다. 원석의 ‘가능성’이란
곧 원석이 다른 어떤 대상이든 ‘될’ 수 있다는 점에 기인하는
것인데 만약 가의 주장이 이 ‘가능성’을 인정하는 꼴이라면
‘자연’적인 원석이 ‘인위’적인 무엇인가로 되는 것을 긍정하는 것이므로 모순이다.
또한 가의 필자는 자연의 대상을 인위적으로 아름답게 하려는 시도 또한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한 시도로 인해 매화가 병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희생
없이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나무는 일생에 단 한 번 꽃을 만개하고는 죽는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상태의 매화도 꽃을 한 번 피우고 나면 큰 영양손실을 입는다. 자연미라고해서 감상의 대상이 희생 없이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적절한 자연미와 인위미가 중용을 지키며 어울리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조화미라고 한다. 제시문 가의 자연미는 미에 대해 협소한 가치관을 드러내고 있다. (1023자)
-> 구성 자체가 굉장히 유려한
논증입니다. 논증 구조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음이 보입니다. 반론
– 재반론을 적절히 사용해 서술했습니다. (가)의 논지에서 ‘가능성’의
측면을 가지고 ‘될’ 것이라는 점 까지를 짚어 서술하는 방식은
주장에 전제된 ‘가정’을 다른 관점으로 재단해 이를 제대로
활용해낸 것에 해당합니다. 이 관점은 아름다움에 ‘인위성’을 전제하지 않는 (가)와
대비되어 ‘인위성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전제하는 (나), (다)의 입장에서
모두 할 수 있는 말로, 두 제시문의 공통된 관점이 투영된 논증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또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인위성’에
들어가는 ‘희생’적 측면을 짚어준 것은 두 제시문 가운데 (다)의 관점을 보다 부각해 (가)를 평가한 것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대나무’라는 외적 대응을 활용한 것도 좋은 시도입니다. 다만,
외부 사례를 활용한 대응을 할 때에는 대응이 정확하게 떨어지는 것을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항상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 이 외적 대응을 활용한
논증에서는 ‘희생’이라는 논리항을 ‘자연 그대로인 상태가 인위적인 것이 되기 위한 과정에서 겪는 희생’과
‘자연 그대로인 상태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획득하기 위해서 겪게 되는 희생’의 두 가지 측면의 희생이 제시되는데요. 사실 ‘희생’이라는 새로운 논리항을 들여와 논증을 짠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기는 합니다만, 굳이 들여오려 한다면 기존의 제시문의 틀을 깨지 않는 선에서 들여오는 선택이 중요합니다. 저는 첫 번째 측면의 희생,
그러니까 ‘자연 그대로인 상태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서 겪는 희생’이 기존 제시문의 논의에서 등장한 희생의 의미였기에, 이를 그대로
활용하는 사례를 가져오는 것이 더 잘 짜인 논증을 만들 수 있었으리라고 봅니다. 제시문의 논의와 다르게 전개되는 논리 전개는 어쨌든 채점자의 ‘채점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 공산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 점 염두하시기 바랍니다.
-> 또 하나를 지적하자면 이
부분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자연미와 인위미의 중용을 통한 ‘조화미’라는 점을 마지막에 지적해주는 형식은 굉장히 깔끔한 구성입니다만, 앞선 ‘논증 구조’와는 약간 맞지 않는 인상을 줍니다. 첫 번째 논증은 (나), (다) 둘의 논의를 모두 포괄하는 비판적 평가가 될 수 있지만, 특히 두
번째 논증은 (나)보다 (다)의 관점에서 바라본 (가)에
대한 비판적 평가였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에서 결론을 (나)의 관점에 국한된 것으로 도출해버린 것은 조금 문제가 있겠죠. 이
점까지 염두해주시면 굉장히 좋은 답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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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구성이 간결하고 제시문에 대한 이해 역시 상당히 갖추어진 답안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언급해드린 사항들은 굳이 이 문제가 아니더라도 좀 더 나은 답안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생각해보아야 할 지점이니 꼭 짚어보시고 넘어가시기 바라며, 여기
첨삭에서 나온 내용들을 바탕으로 다른 연세대학교의 기출문항들도 반드시 풀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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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 랭킹 극하위권으로 밀려난 거 ㅇ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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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얼마나 하고 다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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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요즘 오르비 많이 붙들고 있는데.. 랭킹 근처도 못가는ㅜㅜㅎㅎㅎ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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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죠?? 2
아니 아 왜 아 제르맹님보다 랭킹이 높은거죠? 저는 그렇게 많이 햇다 생각안했는대
우와 감사합니다.
문제 1번에서 드러나는 각론적 비교의 한계는 연세대 논술 기출 문제를 많이 풀어보면서 고쳐나가야 될 부분이겠군요.
논술실록도 그 때 2권 4권만 보라고 하셨나요? 그렇게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