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보는 조선시대 과거 시험 문제들
문제들을 보면 현재랑 별반 다를 거 없다고 생각되네요.
모두들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들
현재의 행정고시와의 비교도 재밌을 것 같아요.
책문에 나온 조선시대 과거 시험 문제~
1장. 지금 가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가 ㅡ 광해군
2장. 술의 폐해를 논하라 ㅡ 중종
3장. 나라를 망치지 않으려면, 왕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ㅡ 명종
4장. 섣달 그믐밤의 서글픔, 그 까닭은 무엇인가 ㅡ 광해군
5장. 그대가 공자라면 어떻게 정치를 하겠는가 ㅡ 중종
6장. 지금 이 나라가 처한 위기를 구제하려면 ㅡ 광해군
7장. 정벌이냐 화친이냐 ㅡ 선조
8장. 6부의 관리를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가 ㅡ 명종
9장. 외교관은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하는가 ㅡ 중종
10장. 교육이 가야할 길은 무엇인가 ㅡ 명종
11장. 인재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 ㅡ 세종
12장. 처음부터 끝까지 잘하는 정치란? ㅡ 중종
13장. 법의 폐단을 고치는 방법은 무엇인가 ㅡ 세종
그 외에도 전해져내려오는 기출문제들로는
1. 행정수도 건설문제 ㅡ (출제자: 세종)
도읍을 두개 건설 하는 것은 어떤 뜻이 있는가?
2. 사례형 ㅡ (출제자: 세종)
우리 조선에서는 고려의 사병(私兵)을 경계하여 모두 혁파하였다. 그런데 그 후에 한 대신이 다시 사병의 이로움을 말했다.
고려에서 대신을 욕보인 것을 거울 삼아, 우리 조선에서는 비록 죄과(罪過)가 있다 해도 죄를 직접 캐묻지 않고
여러 가지 증거로 죄를 정하였다. 그런데 대신이 말하기를, '후세에 반드시 죄 없이 모함에 빠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고 하였다.
고려에서 대신이 정권을 쥐고 흔든 것을 거울 삼아, 우리 조선에서는 크고 작은 일을 모두 임금에게 재결받도록 하여 의정부가 마음대로 결단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런데 대신이 또 말하기를 '승정원[임주;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이 가진 권한이 지나치게 크다.'고 하였다.
고려에서 정방이 외람되게 인사권을 행사한 폐단을 거울 삼아, 우리 조선에서는 이조와 병조가 분담하게 하였는데, 그 권한이 또한 크니 정방을 다시 설치하고 제조(提調; 큰 일이 있을 때 임시로 임명되어 그 관아를 다스리는 경우의 종 1 품, 또는 2 품인 경우. 정 1 품이면 도제조.)를 임시로 낙점하도록 하자는 대신이 있다.
거론된 대신들의 네 가지 책(策)이 타당한가? 타당하지 않은가? 아니면 또 다른 의견이 있는가?
그대 대부들은 사책(史策)에 널리 통달하니 현실에 맞는 대책을 깊이 밝혀, 각자 마음을 다하여 대답하라."
3. 독도문제 (출제자: 숙종)
"울릉도가 멀리 동해에 있는데 강원도에 속해 있다. 수로가 멀고 험해 섬사람들을 데리고 나오면서 현재 비어 있다.
요즘 일본인이 죽도(竹島)라 부르면서 백성들의 어로 활동을 금지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우리 입장을 설명해도 (일본은) 들을 생각이 없다.
혹자는 장수를 보내 점거해 지키자고 하고, 혹자는 혼란을 만들지 말고 일본인의 왕래를 허용하자고 하는데,
변방을 편안히 하고 나라를 안정시킬 방도를 강구해 자세히 나타내도록 하라."
그리고
율곡이이의 유명한 답안지인 천도책에 관한 글도 첨부합니다
참고로 율곡이이는 장원을 9번 해서 9도 장원공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전국 수석만 9번..
율곡 이이 선생의 천도책[天道策]
율곡 이이선생이 지은 천도책(天道策)이라 알려진 문장입니다.
천도책(天道策)이란 “자연의 질서에 대한 이치(理致)”라는 뜻의글입니다.
명종 13년 1558년에 율곡 이이 선생이 23세때 문과 별시를 보러 갔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이런 저런 방황을 했던 이이는 요즘으로 치면 명문가도 아니고 주목 받던 신진도 아니었습니다.
이해 별시의 제책 문제를 낸 출제자들은 성격이 좀 특이해서 상당히 어려운형이상학적인
문제를 출제하고 문제속에 함정도 넣어 두었습니다.
그러나 율곡 이이라는 한 고시생의 답안을 받고 이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 답안은 조정 전체를 충격에 빠트렸고, 당시 우수답안이 다 그랬듯이 이리 저리 필사되어
돌았는데, 보는 사람들마다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급기야 그 내용이 중국으로 건너갔고 후에 중국에서 온 사신이 이율곡을 소개받고 "아
저 사람이 천도책을 지은 사람이냐?"라고 물었다고 전합니다.
이 답안은 세로 약 30cm에 가로 약 10m의 크기로 약 2,500자의 글자로구성되어 있는데
세시간 정도에 걸쳐 완성하였으며,
그 내용을 보면 조선 중기시절 당시 성리학(性理學)적 입장에서 바라본 우주관(宇宙觀)에
대한 생각을 살필수 있고, 이때 벌써 이율곡선생은 퇴계 이황선생의 우주만물에 대해서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과는 다른 명리(明理)에 대한 다른 이론인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이
완성되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 읽어보아도 감탄사가 절로 나오며 과연 해동주자(海東朱子)라 칭할만한 대문장입니다.
참고로 전시(殿試)인 대과시험에서는 임금이 문제를 출제하였고, 임금이 배석하지 않는
별시(別試) 등의 시험에서는 주로 3정승이 함께 의논하여 문제를 정하는데 질문하는 문제를
책문(策問)이라하고 그에 대한 답안지를 대책(對策)이라합니다.
[책문(策問)]
천도(天道)는 알기도 어렵고 또 말하기도 어렵다.
해와 달이 하늘에 걸려서 한 번은 낮이 되고 한 번은 밤이 되는데, 더디고 빠른 것은 누가
그렇게 한 것인가?
간혹 해와 달이 함께 나와서 서로는 겹쳐서 일식과 월식이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오성(五星)은 씨[緯]가 되고 여러 별은 날[經]이 되는 것을 또한 상세하게 말할 수 있는가?
경성(景星, 상서로운 별)은 어느 때에 나타나며 혜발(彗孛, 상서롭지 못한 별 이름)이
나오는 것은 역시 어느 때 있는 것인가?
혹자가 말하기를, “만물의 정기(精氣)가 올라가서 여러 별이 된다.” 하는데, 이 말은 또한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바람은 어느 곳에서 일어나 어디로 들어가는가?
어떤 때에는 불어도 나무가 울리지 아니하는데, 어떤 때에는 나무를 꺾고 집을 허물어
뜨리며, 순풍도 되고 폭풍도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구름은 어디로부터 일어나며, 흩어져서 오색(五)이 되는 것은 무엇에 감응한 것이며,
간혹 연기 같고 연기 아닌 것 같기도 한 것이 욱욱(郁郁)하고 분분(紛紛)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안개는 무슨 기운이 발한 것이며, 그것이 붉고 푸르게 되는 것은 무슨 징조인가?
누런 안개가 사방을 막기도 하고, 낮에 많은 안개가 끼어 어둡기도 한 것은 또 무엇
때문인가?
우레와 벼락은 누가 이를 주재하여 그 빛이 번쩍번쩍하고 그 소리가 두려운 것은 무엇
때문인가?
간혹 사람이나 물건이 벼락을 맞는 것은 또 무슨 이치인가?
서리는 풀을 죽이고 이슬은 만물을 적시는데, 서리가 되고 이슬이 되는 이유를 들어
볼 수 있는가?
남월(南越)은 따뜻한 지방으로 6월에 서리가 내리는 것은 혹독한 괴변(怪變)인데,
당시의 일을 상세하게 말할 수 있는가?
비는 구름을 따라 내리는 것인데, 간혹 구름만 자욱하고 비가 오지 아니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신농씨(神農氏) 때에는 비가 오기를 원하면 비가 오는 태평한 세상이라 36번의 비가
있었으니 천도(天道)도 사사롭게 후(厚)한 것이 있는가?
혹은 군사를 일으킬 적에 비가 오고, 혹은 옥사(獄事)를 판결할 적에 비가 오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초목의 꽃술은 다섯 잎으로 된 것이 많은데, 눈꽃[雪花]은 유독 여섯 잎으로 된 것은
무슨 이유인가?
눈 위에 눕고 눈 속에 서는 것과, 손님을 영접하고 벗을 방문하는 일들도 다 말할 수
있는가?
우박[雹]은 서리도 아니고 눈(雪)도 아닌데, 무슨 기운이 모인 것인가?
어떤 것은 말의 머리만큼 크고 어떤 것은 달걀만큼 커서 사람과 새와 짐승들을 죽인 것은
어느 때에 있었는가?
천지가 만상(萬象)에게 각각 그 기운을 두어서 이루었는가 아니면 한 기운이 유행(流行)
하다가 흩어져서 만상이 되었는가?
간혹 보통의 도리에 어긋나는 것은 하늘의 기운이 일그러진 때문인가 아니면 사람의 일이
잘못되었기 때문인가?
어떻게 하면 일식과 월식이 없을 것이며 별이 제자리를 잃지 않을 것이며, 우레와 벼락이
치지 않을 것이며, 서리가 여름에 내리지 않을 것이며, 눈이 너무 많이 내리지 아니하며,
우박이 재앙이 되지 아니하며, 풍해와 수해가 없이 각각 그 질서에 순응하여 마침내 천지가
안정되고 만물이 육성되는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인가?
그 도는 어떤 것에서 말미암는가?
여러 선비들은 널리 경사(經史)에 통하여 능히 이런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니 각각 마음을
다하여 대답하라.
[대책(對策)]
하늘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어서 그 이(理)는 지극히 미묘하고, 그 상(象)은 지극히
드러났으니 이 말을 아는 이라야 더불어 함께 천도(天道)를 논(論)할 것입니다.
이제 집사(執事) 선생께서 지극히 미묘하고 지극히 현저한 도(道)로써 문목(問目)을 내어
궁구하고 연구한[窮格] 논설을 듣고자 하니, 진실로 학문이 천(天)ㆍ인(人)을 다한 이가
아니라면 어찌 능히 이것을 논하겠습니까?
청컨대, 어리석은 저는 평상시에 선각자에게 들은 바로써 밝은 물음에 만(萬)의 한 가지라도
답하고자 합니다.
그윽이 이르건대, 만화(萬化)의 근본(根本)은 오직 음양(陰陽)뿐입니다.
이 氣가 동(動)하면 양(陽)이 되고 정(精)하면 음(陰)이 됩니다.
한 번 동하고 한 번 정한 것은 기(氣)요, 동하게 하고 고요하게 하는 것은 이(理)입니다.
대개 형상이 천지 사이에 있는 것은 때론 오행의 바른 기가 모인 것도 있고, 혹은 천지의
괴이한 기를 받은 것도 있습니다.
또한 음양이 서로 부딪치는 데서 나기도 하고 혹은 두 기[二氣]의 발산하는 데서 나기도
하기 때문에 해ㆍ달ㆍ별은 하늘에 걸렸고, 비ㆍ눈ㆍ서리ㆍ이슬은 땅으로 내립니다.
바람과 구름이 일어나고 우레와 번개가 일어나는 것은 이 기(氣)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 하늘에 걸리게 하고 땅에 내리게 하며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게 하고 우레와 번개가
일어나게 하는 것은 이 이(理)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음ㆍ양이 진실로 조화하면 저 하늘에 걸린 것은 그 절도를 잃지 아니하고, 땅에 내리는
것은 다 때에 순응하여 바람ㆍ구름ㆍ우레ㆍ번개가 다 화(化)한 기운 속에 있을 것이니,
이는 이(理)의 떳떳한 것입니다.
음ㆍ양이 조화하지 않으면 그 행하는 것이 절도를 잃고 그 발산하는 것이 때를 잃을때
바람ㆍ구름ㆍ우레ㆍ번개는 다 괴이한 기(氣)에서 나옵니다.
이는 이(理)가 변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천ㆍ지의 마음이라 사람의 마음이 바르면 천ㆍ지의 마음도 바르고,
사람의 기(氣)가 순하면 천ㆍ지의기도 순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理)가 떳떳하거나 변하는 것을 일체 천도(天道)에만 맡겨야 되겠습니까?
저는 이것에 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홍몽(鴻濛, 어둡고 아득한 모양)이 처음으로 갈라져서 해와 달이 교대로 밝으니 해는
태양의 정(精)이 되고 달은 태음의 정이 됩니다.
양정(陽精)은 빠르게 운행하기 때문에 하루에 하늘을 한 바퀴 돌고, 음정(陰精)은
더디게 운행하기 때문에 하루에 다 돌지 못합니다.
양(陽)이 속하고 음(陰)이 더딘 것은 기요, 음이 더디게 되는 것과 양이 빠르게 되는 것은
이입니다.
저는 누가 그렇게 하는지를 알지 못하겠으나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해는 임금의 상징이요. 달은 신하의 상징입니다.
그 운행하는 궤도를 같이 하고, 그 모이는 데 절도를 같이 하기 때문에 달이 해를 가리면
일식(日蝕)이 되고, 해가 달을 가리면 월식(月蝕)이 되는 것입니다.
저 달이 희미한 것은 오히려 변괴(變怪)가 되지 아니하나 이 해가 희미한 것은 음(陰)이
성하고 양(陽)이 미약한 까닭으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깔보고 신하가 임금을 거역하는
형상입니다.
하물며 두 해가 한꺼번에 나오거나 두 달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것은 비상한 괴변(怪變)이니
다 괴이(怪異)한 기(氣)로 인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일찍이 옛일을 탐구해 보니, 재앙과 변괴는 덕을 닦는 치세(治世)에는 나타나지
아니하고, 박식(薄蝕)의 변(變)은 다 말세의 쇠한 정치에서 나왔으니 하늘과 사람이 서로
합하는 것을 여기에서 알 수 있습니다.
지금 하늘이 푸른 것은 기가 쌓여 있는 것이요, 바른 색(色)은 아닙니다.
만약 별이 찬란하게 기강(紀綱)이 되지 않는다면 천기(天機)의 운행은 아마도 구명(究明)
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 별이 반짝반짝하고 가물가물하는 것은 각각 제자리와 차례가 있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모두 원기(元氣)의 운행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뭇별들은 하늘을 따라 운행하고 스스로 운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날[經]이라 하고,
오성(五星)은 때를 따라 각각 나타나고, 하늘을 따라 행하지 않기 때문에 씨[緯]라고 합니다.
하나는 정한 차례가 있고 하나는 일정한 절도(節度)가 없습니다.
그 대개(大槪)를 말하자면 하늘은 날[經]이 되고 오성은 씨[緯]가 됩니다.
그 상세(詳細)한 것을 말하자면 한 장의 종이에다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
상서로운 별도 상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변괴로운 별도 상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경성(景星)은 반드시 밝은 세상에 나타나고 혜발(彗孛)은 반드시 쇠한 세상에
나타나는 것이니,
우순(虞舜)의 학문이 밝은 세상에는 경성이 나타났고 춘추전국 시대에는 혜발이
나타났습니다.
우순같이 다스린 시대가 한 번 뿐이 아니며 춘추와 같이 어지러운 시대도 한 번만이 아닌데
어찌 일일이 들어 진술하겠습니까.
만물의 정기(精氣)가 위로 올라가 별이 된다고 하는 따위는 저는 삼가 의혹(疑惑)을 가집니다.
별이 하늘에 있는 것은 오행의 정(精)이요, 자연의 기(氣)입니다.
저는 어떤 물(物)의 정기가 어떤 별이 되었다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팔준(八駿)이 방성(房星)의 정기가 되었고, 부열(傅說)이 죽어서 별이 된 것과 같은 따위는
산과 물이 있는 큰 땅이 그림자를 푸른 하늘에 보낸다는 말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는 선비가 믿을 바가 아닙니다.
별의 기운이 다된 것은 기가 허(虛)하여 엉긴 것입니다.
그것이 혹시 음기(陰氣)가 맺히지 못하여 간혹 떨어져서 돌이 되기도 하고 언덕이 되기도
한다는 것은 제가 소자(邵子)에게 들었으나, 물의 정기가 별이 된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또 대개 천지 사이에 가득 찬 것은 다 기(氣)입니다.
음기가 엉기고 모여서 밖에 있는 양기가 들어가지 못하면 돌고 돌아서바람이 되는 것입니다.
만물의 기운은 비록 말하기를, “간방(艮方)에서 나와서 곤방(坤方)으로 들어간다.”고 하나,
그 음의 모이는 것이 정(定)한 곳이 없으므로 양의 흩어지는 것도 방향(方向)이 없는 것입니다.
큰 땅덩이가 기(氣)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어찌 한 방위(方位)에서만 얽매일 것이겠습니까.
동쪽에서 일어나는 것이 만물을 기르는 바람이지만 그렇다고 동쪽에서 처음 시작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까?
서쪽에서 일어나는 것이 숙살(肅殺)하는 바람이지만 그렇다고 서쪽에서 처음 시작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까?
가시나무에 새 집을 짓고 빈 구멍에 바람이 불지만 그렇다고 빈 구멍에서 처음 시작된다고
할 것입니까?
정자(程子)의 말에, “올해의 우레는 일어나는 곳에서 일어난다.” 하였으니, 저로서는 바람이
흔들흔들하고 살랑살랑하는 것은 기(氣)가 부딪치면 일어나고 기가 쉬면 그치는 것으로
당초에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치세(治世)는 음ㆍ양의 기가 펴져서 맺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흩어지더라도 반드시 화(化)하여 불어도 나뭇가지가 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도(世道)가 이미 쇠하면 음ㆍ양의 기운이 서리어 펴지지 못하기 때문에 그 흩어질
적에 반드시 격동(激動)하여 나무를 꺾고 집을 허물어뜨리는 것입니다.
순풍[少女]은 화(化)하게 흩어지는 것이요, 폭풍[颶母]은 격동해서 흩어지는 것입니다.
성왕(成王)이 한 번 생각을 잘못하자 큰 바람이 벼를 쓰러뜨렸고, 주공이 수년(數年) 동안
덕화(德化)를 펴자 바다에는 풍파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기운이 그렇게 된 것은 역시 인간의 일에 말미암은 것입니다.
만약 산천의 기운이 올라가서 구름이 되는 것이라면 좋고 나쁜 징조를 그를 통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선왕(先王)은 영대(靈臺)를 설치하고 기상을 살펴서 길ㆍ흉의 징조를 고찰하였습니다.
대개 좋고 나쁜 징조는 일어나는 그 날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전조가 있기
때문입니다.
구름이 희면 반드시 흩어지는 백성이 있고 구름이 푸르면 반드시 곡식을 해하는 벌레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검은 구름이 어찌 수재(水災)의 징조가 되지 않으며 붉은 구름이 어찌 전쟁의
징조가 되지 않겠습니까.
누런 구름만이 풍년이 들 상서로운 징조이니 이는 곧 기운이 먼저 나타난 것입니다.
연기도 아니고 안개도 아닌 것이 분분하게 빛나고, 맑게 흩어져 유독 지극히 화한 기운을
얻어서 성왕(聖王)의 상서로운 것이 되는 것은 오직 경사로운 구름[慶雲]입니다.
진실로 백성의 재물을 살지게 하고 노여움을 풀어 주는 덕이 없으면 이것을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어찌 수(水)ㆍ토(土)의 맑고 가벼운 기운이 한갓 백의 청구(白衣靑狗)가 되는 데 비할
것이겠습니까.
안개는 음기(陰氣)가 새지 못하여 김[蒸]이 막혀서[鬱] 된 것입니다.
물체의 음기가 모인 것도 능히 안개를 낼 수 있으니, 대개 산천의 나쁜 기운입니다.
그 붉은 것은 병상(兵象)이 되고, 푸른 것은 재얼(災孽)이 되는 것은 다 음이 성한 징조입니다.
역적 왕망(王莽)이 한(漢)나라를 참위(僭位)했을 때에는 누런 안개가 사방에 쌓였고,
천보(天寶)의 난 때에는 큰 안개가 낮에 끼어 어두웠으며,
한고조(漢高祖)가 백등(白登)에서 포위되었을 때나, 문산(文山 문천상(文天祥))이
시시(柴市)에서 죽을 때에는 다 흙먼지가 일어났습니다.
혹시 신하가 임금을 반역한다거나 혹시 오랑캐가 중국을 침략한다거나 하면 이런 것은
다 가히 그 비유로써 추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양기가 발산한 뒤에 음기가 양기를 싸서 양기가 나오지 못하면, 떨치고 쳐서 우레와
번개가 됩니다.
우레는 반드시 봄과 여름에 일어나니 이는 천지의 노한 기운입니다.
빛이 번쩍이는 것은 양기가 발하여 번개가 된 것이요, 소리가 두려운 것은 두 기[二氣]가
부닥쳐서 우레가 된 것입니다.
예전 선비들이 말하기를, “우레와 번개는 음ㆍ양의 정기(正氣)라, 벌레를 놀라게 하기도
하고, 간사한 사람을 치기도 한다.” 하였습니다.
사람도 진실로 사기(邪氣)가 모인 것이 있고 물(物)도 역시 사기가 붙어 있으니, 정기가
사기를 치는 것은 또한 당연한 이치입니다.
공자께서 심한 천둥이 칠 때면 반드시 얼굴빛이 변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하물며 마땅히 벼락이 쳐야 할 곳에 친 경우이겠습니까?
상(商)의 무을(武乙)과 노(魯)의 이백(夷伯)의 사당에 벼락이 친 것은, 이런 이치가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반드시 어떤 주체가 그 벼락 치는 권한[柄]을 잡고 주관하는 것이다.” 한다면,
이는 천착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또 양기가 펴질 때에 이슬로써 만물을 적시는 것은 구름의 젖은 기운이요,
음기가 혹독할 때에 서리로써 풀을 죽이는 것은, 이슬이 맺힌 것입니다.
《시경》에, “갈대는 푸르고 푸르른데, 흰 이슬은 서리가 된다.” 한 것은 이를 말한 것입니다.
혹시 음기가 지극히 성하면 서리가 제 시기에 내리지 아니합니다.
위주(僞周)가 조정에 임하자, 음ㆍ양의 위치가 바뀌어 남월(南越)은 지극히 따뜻한 지방인데도
6월에 서리가 내렸으니, 생각건대 이는 필시 온 세상이 온통 몹쓸 음기(陰氣) 속에 갇혀
있어서인 듯합니다.
무씨(武氏)의 일은 말할 수 있지만 말하려면 길어집니다.
비와 이슬은 다 구름에서 나오는 것인데 젖은 기운이 성한 것은 비가 되고, 젖은 기운이
적은 것은 이슬이 됩니다.
음양이 서로 합하면 이에 비가 내리는데 간혹 구름만이 자욱하고 비가 오지 않는 것은 아래위가
서로 합하지 못해서입니다.
《홍범전(洪範傳)》에 이르기를, “황제가 지극하지 못하면 그 벌(罰)은 항상 음(陰)하다.” 한
것은 이를 말한 것입니다.
또 양이 지극히 성하면 가물고 음이 성하면 장마가 지는데, 반드시 음양이 조화하여야 비로소
비 오거나 맑은 날씨가 때를 맞춥니다.
대개 신농씨 같은 성인의 순박하고 밝은 시대에 있어서 맑은 날씨를 바라면 맑고 비를 바라면
비가 온 것은 진실로 당연한 이치입니다.
성왕(聖王)이 백성을 다스릴 때 하늘과 땅이 화합하여 5일에 한 번씩 바람이 불고 10일에
한 번씩 비가 내린 것도 역시 그 떳떳한 이치입니다.
이 같은 덕이 있으면 반드시 이 같은 보응이 있는 것이니, 어찌 천도(天道)가 사사로이
후(厚)하게 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대개 억울한 기운은 한재(旱災)를 부르기 때문에 한 여자가 억울함을 품어도 오히려
흉년(凶年)을 이룹니다.
무왕(武王)이 상(商)나라를 이긴 것이 족히 천하의 억울한 기운을 해소하기에 충분하였고,
안진경(顔眞卿)이 옥사를 판결한 것이 한 지방의 억울한 기운을 해소하기에 충분하였으니
알맞게 비가 내린 것이 괴이(怪異)할 것이 없습니다.
하물며 태평한 세상에는 본래 한 사내나 한 아녀자조차도 그 은택을 입지 않은 이가 없으니,
어찌 비와 바람이 순조롭지 않겠습니까.
지극히 추울 때에는 하늘과 땅이 비록 닫히고 막혔으나 음양이 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비가 엉겨서 눈이 되는데, 이는 대개 음기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초목의 꽃은 양의 기운을 받았기 때문에 꽃술이 다섯 잎이 난 것이 많은데, 5는 양의
수(數)입니다.
눈꽃[雪花]은 음의 기운을 받았기 때문에 유독 여섯 잎이 되었으니, 6은 음의 수입니다.
이 역시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원안(袁安)이 문을 닫고 눈 위에 누운 것과 구산(龜山)이 뜰에 선 것과 왕원보(王元寶)의
난한회(暖寒會)와 왕자유(王子猷)의 산음(山陰)의 흥(興)과 같은 것은, 혹은 고요한 것을
지키는 낙이 있고 혹은 도(道) 있는 이를 찾는 정성이 있어서이며 혹은 호사하던지 혹은
방종한 데서 나온 것으로서 다 천도와 관계되지 않는 것이니 어찌 오늘 말할 거리가
되겠습니까.
또 우박은 어그러진 기운에서 나온 것입니다.
음기가 양기를 협박하기 때문에 그 발(發)할 때는 물을 해칩니다.
옛일을 상고하면 우박이 큰 것은 말 머리만 하고 작은 것은 달걀만 하여 사람을 상하게
하고 짐승을 죽였던 일이 혹은 전란이 심한 세상에 일어나기도 하였고 혹은 화를 일으킨
임금을 경고하기 위하여 일어나기도 하였으니, 그것이 역대의 경계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것은 반드시 여러 번 진술하지 않더라도 이를 미루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아, 한 기운이 운행하고 조화하여 흩어져서 만 가지 형상이 되는 것이니, 나누어 말하면
천지와 만 가지 형상이 각각 한 기운이나 합하여 말하면 천지와 만 가지 형상이 모두 같은
한 기[一氣]입니다.
오행의 바른 기운이 모인 것은 해와 달과 별이요, 천지의 어그러진 기운을 받는 것은 혼무ㆍ
흙비, 안개ㆍ우박이 됩니다.
천둥과 번개는 두 기[二氣]가 서로 부닥치는 데서 생기고, 바람ㆍ구름ㆍ비ㆍ이슬은 두
기가 서로 합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니, 그 구분은 비록 다르나 그 이치는 하나입니다.
집사(執事)께서 편(篇)의 끝에서 또 말하기를, “하늘과 땅이 제자리를 잡고 만물이 육성되는
것은 그 도가 무엇에 말미암은 것인가?” 하였는데, 어리석은 저는 이 말에 깊은 느낌이
있습니다.
저는 듣건대, “임금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함으로써 조정을 바르게 하고, 조정을 바르게
함으로써 사방을 바르게 하여야 하니, 사방이 바르면 천지의 기운도 바르다.” 하였고
또 듣건대, “마음이 화하면 몸이 화하고, 몸이 화하면 기운이 화하고, 기운이 화하면 천지의
환한 기운이 응한다.” 하였으니,
천지의 기운이 이미 바르면 해와 달이 어찌 서로 침해하며 별이 어찌 그 자리를 잃는 일이
있겠습니까.
천지의 기운이 이미 화하면 천둥ㆍ번개ㆍ벼락이 어찌 그 위력을 내며, 바람ㆍ구름ㆍ서리
ㆍ눈이 어찌 그때를 잃으며, 흙비가 내리는 어그러진 기운이 어찌 그 재앙을 만들겠습니까.
하늘은 비ㆍ볕ㆍ더운 것ㆍ추운 것과 바람으로써 만물을 생성하고, 임금은 엄숙함과
다스림과 슬기와 계획, 신성함[聖]으로써, 위로 천도에 응하는 것입니다.
하늘이 제때에 비를 내리는 것은 엄숙함에 응한 것이며, 제때에 볕이 나는 것은 다스림에 응한
것이며, 제때에 더운 것은 슬기에 응한 것이며, 제때에 추운 것은 계획에 응한 것이며,
제때에 바람 부는 것은 신성함에 응한 것입니다.
이로써 본다면 천지가 안정되고 만물이 육성하는 것은 어찌 임금 한 사람이 덕(德)을 닦는 데
달려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자사(子思)가 이르기를 “오직 천하의 지극한 정성이라야 능히 화육(化育)할 수 있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양양(洋洋, 넓고 큰 모양)히 만물을 발육하여 높이 하늘에 닿았다.” 하였으며,
정자가 이르기를 “천덕(天德)과 왕도(王道)의 요령은 다만 홀로 삼가는 데 있다.” 하였습니다.
아, 지금 우리 동방의 동물과 식물이 모두 자연의 화육(化育) 속에 고무(鼓舞)되는 것이 어찌
성상의 홀로 삼가는 데 달려 있지 않겠습니까.
원컨대, 집사께서 미천한 자의 어리석은 말을 임금께 상달하신다면, 가난한 선비는 움막
속에서도 유한이 없을 것입니다.
삼가 대답합니다.
[요지(要旨)]
율곡선생의 천도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겉치레라도 살펴보면,이(理)라는 것이 만물의
본질(本質)을 말함이고, 기(氣)라는 것은 만물의 본질이 아닌 보여지는 현상(現象)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이는 현실에서의 개혁과 실천을 중시하는 인물로써 기를 다스림으로써 본질인 이에
도달할 수 있다고 설파하였으며, 이 글로 유추해보면 실천철학자가 아닌 수양철학자의
관점에서 지극히 형이상학적으로 논지를 시작하면서도 본인이 도달하고자 하는 주장,
즉 뜬구름만 잡을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직접 통제하고 다스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당시 현 세태의 아픈 곳을 찌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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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고 갑니다 ~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