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야 [767661] · MS 2017 · 쪽지

2018-02-22 05: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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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에 글을 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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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침은 어느새 5시를 향해간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자위하며, 오늘 밤도 휴대폰에 나를 가둔다.


초등학교 때, "텔레비전은 바보상자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한 걸 반추해본다.

오늘날 교과서에는 "휴대전화는 바보상자인가"라는 주제로 토론을 하고 있지 않을까.


기술의 결정체라 여긴 물건에 스스로 가두어지는 꼴이란.

자승자박이란 나를 두고 만든 말이 아닐까, 씁쓸한 실소를 지어본다.



밤낮이 바뀐 나에게, 밤에 잠이란 사치에 불가하다.


그리고 밤낮이 바뀐 이유가 오늘날의 나태함이란 사실은 나를 더욱 씁쓸하게 만든다.

하지만, 밤이 낮이 되지는 못했다. 나에겐 늘 밤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밤이 끝나지 않음에 안주하는 꼴. 참으로 꼴불견이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지난 1년 대학 생활을 곱씹어 본다.



재밌는 1년이었다.


많은 사건과 많은 사람들.


스스로 부족함에 소중한 사람을 떠나 보내기도 했었다.

스스로 정의라 여기며, 또 다른 부정의를 행하지는 않았을까.


명강이란 이름이 아깝지 않을, 스스로 깨달음을 준 강의도 있었고,

돈과 시간을 쓰며, 이런 강의에 내 몸을 맡기는 게 참으로 어이없는 강의도 있었다.



수많은 대외활동


그리고 나의 삶


하나 확실한 건 나는 나의 삶을 살았다.

남이 강요한 길이 아닌, 내가 택한 길을 걸어갔기에,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어선 안 된다.

단 하나의 예외 "나"란 존재는 제외하고.



그런데, 어쩌다 나는 나태함으로 빠져들고 있을까.


휴식이란 미명 속에서, 봄날 아래 겨울잠을 찾지 않는가.



에타(강의평 어플리케이션)에서 지난 겨울학기 교수님을 검색해본다.


겨울학기에 들은 김교수님은 어쩌면, 내가 대학을 떠나기 전 들은 마지막 수업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하나 확실한 것은 그 강의는 나에게 명강으로 남을 것이다.


수강평을 읽어본다.

혹평과 호평.


좋은 강의란 무엇일까.

학점을 잘 주는 강의일까, 수업이 쉬운 강의일까.


상반된 수강평 속에 나의 대학 수업을 다시 한번 돌아본다.


적어도 나에겐, 생각하는 수업이 명강이었다.


전공의 임교수님. 통계의 백교수님. 영어의 K교수님. 그리고 기현사의 김교수님.


1년 이란 결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네 분의 명강을 들었다면, 어쩌면 이건 충분한 행운이 아닐까.

기약 없는 이별 끝에 다시 돌아온다면, 그때도 또 다른 명강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런데, 어쩌다 나는 나태함으로 빠져들고 있을까.


삼수란 시절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기댈 곳 없이 상경하여, 고시원에서 꼬박꼬박 6시에 일어나고 새벽 1시에 잠든 나는 어디로 갔을까.

오늘 하루가 어제보다 나아짐에 없음에 분노해 하며 잠을 이루지 못한 나는 어디로 갔을까.



사람들은 말한다.


수능이 전부가 아니고, 수능 이후에 더 큰 시험들이 우리를 기다린다고.


사회란 시험 속에, 왜 나는 성실하지 못한가.


실소를 그치지 못한다.



에타에 김교수님 성함을 검색해본다.


이번 학기에도 몇 가지 수업이 개설되었다.


수업계획서를 읽어본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도시의 승리 : 도시는 어떻게 인간을 더 풍요롭고 더 행복하게 만들었나?"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다. 

저 교재의 의미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적어도 이번 학기엔 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지난 계절 학기 수업에 김교수님께서는 수업중 오늘날 도시의 발전을 이야기하셨다.


도시를 전공으로 배우는 나는, 수업을 마치고 쪼르르 교수님을 쫓아 책 두 권을 소개해 드렸다.

교수님의 관점을 지지하는 책 한 권과, 교수님의 관점과 상반되는 책.


명강에 대한 보답으로 내가 드릴 수 있었던 건, 내가 아는 지식을 나눠드리는 것이 전부였다.

적어도, 지식을 나누는 건 김영란 법에 저촉되지는 않을 거니 말이다.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나의 이야기는 끝이 났고 그 날의 수업은 끝이 났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나, 그 두 권의 책은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교수님의 교재로 말이다.


교수님은 신학과 교수님이다.

미션 스쿨인 Y대에서, 교수님은 그냥 들어야 하는 수업 중 하나를 맡았을 뿐이다.

"종교" 과목으로.


하지만, 교수님의 가르침은 "종교"에 국한되지 않았고, 나에게 새로운 삶의 통찰을 주었다.


그리고 그 통찰과 가르침은 수업이 끝난, 지금 새벽에도 찾아왔다.


진정한 지성인의 모습이 아닐까.

그 짧은 순간의, 나의 이야기를 기억해주시고 교수님은 읽어 보신 것이다.


600쪽과 500쪽이 되는, 결코 쉽지 않은 책을 교수님은 기억해주시고 공부하셨다.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교수님의 모습에서, 나는 진정한 교육자의 모습을 새벽에 맞이하게 됐다.




다시 나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나는 어떤가.


교육 사업을 한다는 외침을 하지만, 나는 왜 정진하지 않는가.

한 평생 학문을 배워온 교수조차 학생의 말 하나를 잊지 않고 더 배워 나가는데,

나는 왜 스스로를 바보상자에 가두고만 있는가.



날자. 날자. 날자. 다시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대학이란 자격증을 위해 지난 5년을 독하게 살아온 나다.

학원 과외 도움없이 이 자리까지 온게 바로 나다.



나의 삶


하나 확실한 건 나는 나의 삶을 살았다.

남이 강요한 길이 아닌, 내가 택한 길을 걸어갔기에,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어선 안 된다.

단 하나의 예외 "나"란 존재는 제외하고.



겨울잠은 끝났다.


새로운 봄이 나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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