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철학자 [512241] · MS 2014 (수정됨) · 쪽지

2018-02-12 21: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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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반수 후 솔직한 심정[긴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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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 때도 미끄러져서 원하는 대학에 갈 점수를 받지 못했다.

변명을 하자면 당일날 아침 생리가 터지고 긴장을 너무 한 탓인지 2교시부터 배탈이 났다.


당시 강대 재종반에 있었던지라 강대까지 다녔는데 건동홍급이라는 게 너무 부끄러웠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소신있게 수능 100%로 메이저 예술대학를 지원했다.

고1때까지 꾸준히 미술을 해왔지만 틀에 박히고 기준을 할 수 없는 미대입시에 환멸감을 느끼고

비교적 기준이 뚜렷한 수능으로 경로를 바꾸었었던 과거가 있다. (당시 공부도 꽤 잘하는 편이었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홍대경영을 버리고 안정권이었던 디자인 학부에 최초합으로 합격했다.

"용이 되지 못한다면 아나콘다 대가리라도 되어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어렸기에 내심 sky서성한 이외의 대학은 상경이든 인문이든 무시하는 심보가 있었다.


그 때가 2년 전이다. 

지금의 나는 중대 경영 추합을 기다리고 있다. 


재작년, 그러니까 내가 1학년이었을 때 정말 힘들었다.

너무나 외로웠고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방황도 참 많이 했다.

갈피를 못 잡고 이것저것 일을 벌여놓기만 했다. 주위 친구들은 징징대긴해도 잘 해나가고 있는데

나는 열정적인 대학생처럼 보이지만 아무것도 제대로 하는 게 없었다. 

의미없는 술담배와 의미없는 만남들을 가지다가 

1학년이 끝난 12월, 내 유일한 대학교 친구이자 남자친구가 군대를 가버렸다.

더욱이 학교 다닐 이유가 없어졌다. 

그래도 열심히 해보려고, 대학생활에 흥미를 가져보려고 노력했다.

발버둥칠 수록 더욱 깊은 늪으로 빠지는 기분이었다.

결국 나는 처음으로 성공한 시간표도 날려버리고 휴학을 했다.


휴학의 동기는 좋았다. 

한창 우울증 증세가 심해져서 울고 있었을때 문뜩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렇게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이 나 자신이라면, 평생 이사람과 살아가야한다면 

차라리 남은 여생을 이 정신병자나 연구하면서 살고 싶다.'

갑자기 막혀있던 무언가가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래, 그렇게 힘들게, 타과생보다 낮은 학점받으면서 이러고 있을 필요가 없어'

그러나 슬프게도 나의 학점은 전과 신청할 커트라인조차 미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과를 하기 위해선 전공공부를 1년 더 다녀서 성적을 올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니 1학년 학점 포기하지말고 열심히다니세요,,,) 


그러다 문뜩, 정말 문뜩 어차피 1년 휴학하고 싶고 + 다른 길 찾을거면

수능을 다시 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사실 이전 수능성적에 미련이 남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이제 더이상 고민은 없다. 나는 어차피 전과할 성적이 못된다. 

(전과를 위해 성적을 올리려고 일년 더 다니기엔 너무 지쳐있었다. 편입 이런 것도 너무 어려워보였다.)

인간 수명 90년으로 잡았을때 지금의 1년 뒤쳐지더라도 내가 하고싶은 일을 위해 공부하는 것

남은 70년을 놓고 보았을때 전혀 문제 없다고 오히려 좋은 선택이자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반대도 있었다. 확실하지 않은 게임에 1년을 아니 현역때까지 따지면 3~4년 정도를 날리고 있는 거라고.


어차피 남의 말 잘들으면 줏대없는 놈이고 안 들으면 고집 센 놈이 된다.

나는 귀닫고 나의 말을 듣겠다, 이게 그때의 마음이었다. 

지금도 변함없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성공했다. 

수능성적은 성공했다. 원서영역은 실패했다.


1년 내내 국어고자였다. 현역때도, 재수때도, 작년에도 국어가 제일 발목을 잡았다.

9평 못봤을땐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10월교육청 못봤을때는 정말 무너졌었다. 

교육청 *도 아니라고 마인드컨트롤해보았지만 

학원 화장실에서 쪼그려 울고, 겨우 진정하고 나왔더니 책상에 앉아서도 울고,

안되겠어서 짐싸서 집으로 가는데 가는 버스에서도 울고, 또 집에서도 울었다. 

국어 평균 80점대만 웃돌던 내가 처음으로 96점이라는 점수를 받았다.

수학은 1년내내 늘 받던 점수 92점. 

사탐은 안믿었던 생윤은 만점이고 믿었던 윤사가... 정말 마음이 아팠다.

윤사는 1년 내내 만점만 받다가 수능때 두 개 틀려버리니 바로 3등급... 

그래도 z0쌤커리 막판탑승해서 많은 도움되었다.(그럼에도난현빠)


성적이 잘나오다보니까 눈이 높아졌다.

그래도 서연고는 못 쓰겠더라... 학원 선생님도 서성한라인에서 추합을 노리자고 했다.

부모님이 연대도 써보자며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니 막판에 판단력이 흐려졌다.

그리고 나름 표본도 분석해보았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다 틀렸다!(이런 젠장!)

결국 수시로 납치될까봐 논술 안 보러 간 대학을

정시에선 예비도 못 받고 추합 결과만 기다리는 중이다.


가만히 있을 순 없어서 현재 복학 준비를 하고 있다. 

이렇게 보니 1년 날린듯싶지만,

나는 요즘 감사하며 살고 있다. 

2017년 다시 꿈을 꿀 수 있어서 감사하고, 또 지금은 돌아갈 학교와 돌아가서 할 수 있는 공부가 있어서 감사하다.


그리고 가장 큰 교훈. 

하고 싶은 일,꿈꾸는 일과 직업은 별개일 수 있다는 것. 

난 그건 핑계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하고 싶은 일,꿈=직업 아니냐? 별 그지같은 합리화가 다 있네'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을 다니고 있어도, 대학을 안다니고 일을 하고 있어도,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있어도

다 과정일 뿐이다.

의사가 되기 위해 의대로 진학하든, N수를 하든 아니면 카페알바를 하든 군대를 가든

심지어 결국 의사가 되든, 다 자신의 인생이라는 과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목표로 하는 꿈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학부가 끝이 아니고, 취업이 끝이 아니고, 대학원이 끝이 아니다. 


물론 전문성이 필요한 직업은 일찍부터 준비를 하고 공부를 하는 게 좋겠지.

나같은 경우는 처음 목표는 심리학이었다가 인문학전체였다가 철학 전공으로 좁혀졌었다.

내가 생각해도 난 변덕 심하고 배경지식없이 그저 "공부하고 싶다!" 라는 마음 뿐이었으니...

지금은 전공은 크게 상관없고,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그 일을 위해 틈틈이 공부중이다.



만약 그때 내가 "에이 그건 좀 에바지"하고 시도조차 안했으면

나는 평생 열등감에 휩싸여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에게 화가 나서 더욱 우울증이 심해졌겠지.

복학하고 다시 학교에 가는 게 조금 두렵긴 하지만(팀플 ㅅㅂ...)

해야할 일이 아닌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생겼기에 아마추어이지만 조금씩,

천천히 해나가고 있는 과정이다. 


작년의 "꿈을 가진 내 자신"과 

올해의 "딱히 이룬 것 없는 내 자신"을 비교해보았을 때 

뭐 겉으로는 변한 게 달리 없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재수때의 나보다 더 울었고,

또 놀땐 그 어느때보다 열심히 놀았고, "감사"라는 말의 의미를 진심으로 배웠다.

아직도 나는 한 치 앞도 예측 못하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될 지 알 수 없지만

그까짓 거 걱정할 바에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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